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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특집] 초대교회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자"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2/10 [17:37]

[종교특집] 초대교회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자"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2/10 [17:37]

▲ 초대교회  © 아산미래신문



2021년 표어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자”“

 

초대교회

담임목사 이덕희
아산시 청운로 170번지

010-6424-6850


이덕희 목사의 교회시작 역사

충남서천에서 늘사랑교회 시작
1988년도 대구동남교회  전도사사역을 마치고 서을방배동 총회신학교(백석) 3학년때 충남웅천에 사시는 전도사님이 서천군 종천면 장구리3구에 집사님 한분이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셔서 같이 늘사랑교회를 그해12월 12일에 사모와 늘사랑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 아산미래신문

대구를 떠나 시골에 오니 거처할 집이 없었다 있는 것은 짓다가 그만 둔 방 한칸에 창고뿐이었다. 그 집을 수리해서 쓰기로 허락을 받고 손수 연탄보일러를 놓았다.규격에 맞을만한 헌 문을 사서 달고 바닥은 겨우 미장만 되어있는 3평짜리 창고에서 늘사랑교회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왔는데 예배실이 비좁아 어렵사리 예배하는 것을 보고김종관학생의 아버지가 자신의 8평짜리 밭에 천막으로 예배실을 만들어주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약 3년정도를 늘사랑교회를 담임하다가 91년도에 후임목사에게 늘사랑교회를 위임하고 91년 10월에 서울 은평교회 임찬빈집사님의 도움으로 온양에서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온양에서 초대교회시작
그당시는 온양시 모종동에 월500에 25만 상가를 얻어서 예배를 드렸다. 그때가 91년 2월 24일 이었다.
사모와 집사님 한 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모종동 주공 아파트에 사모의 헌신적인 전도로 점차 부흥하여 92년 4월30일에 초대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 아산미래신문


교회가 여전도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승합차가 핖요해서 사게 되었다. 자동차 할부금을 8개월 넣을 때 쯤 교회 어려움이 왔다 여전도회 집사들이 떠나가므로 교회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은 개인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재정상황에 어쩔수 없이 92년 10월부터 수년간 교회를 여기저기 이전하며 교회도 목사의 가정도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 아산미래신문


설상가상 IMF까지 왔고 교회 재정을 개인카드로 충당하다보니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가 겨우 신용을 회복하게 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희목사의 곁을 성도들이 끝까지 지켜주어 어려운 시간을 함께 버텨낼 수 있었다. 


모종동에서 2015년 5월 현재 권곡동 예배당으로 이전하게 됨은 많은 분들의 도움중에서도 한장섭 장로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이전할만한 큰 돈을 마련할수 있게 도와주었고 현재 교회30평, 사택30평, 총 대지면적 99평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초대교회 소개
초대교회의 담임목사인 이덕희 목사는 서천에 늘사랑교회를 개척을 시작으로 백석대학교를 졸업, 백석대학원을 졸업하고 충남노회 임원을 했으며 올해 33주년째아산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이덕희 목사의 목회철학은 “내 영혼의 때를 위하여”라는 중심에 초점을 맞추고성도들이 준비된 신부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간절히 중보한다.


다른것보다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중심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있으며 예배 중심의 삶과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호소하며 성도들이 성령에 충만함을 받기를 강조한다.


이덕희 목사도 역시 본인의 가르침대로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기를 애쓰며 세상의 어떤 즐거운 일을 도모하기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여기까지 오게하신 것은 모두 주님이 하셨고 앞으로도 주님이 하실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영광 돌린다고 말한다.

 

  © 아산미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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