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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임 묘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2/07/07 [10:05]

윤자임 묘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2/07/07 [10:05]

  © 아산미래신문

윤자임(尹自任, 1407~1478)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벼슬을 다한 후 아 산으로 와서 여생을 보냈는데 송악면 평촌리의 묘는 그 만큼 세월이 깊다. 탁 트인 그의 묘역 은 먼발치에서 보 아도 단아한 기품으로 광채가 났다. 근래에 호석을 둘러 오래된 봉 분이 안정감을 찾았고 비석과 망주석도 근 년의 석물이지만 묘소의 기운에 거슬 리지 않는다. 윤자임묘는 묘표석이 탄성을 자아 낼 만큼 우아하다. 이보다 작다면 옹 색할 터이고, 이보다 크다면 오히려 망인에 실례가 될 만한 아담한 크기 인데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도 치 명적이지만 석재가 가진 본래의 문양 을 잘 살려낸 치밀함이 대단하다. 석 공이 세월의 채색까지도 염두에 두고 정을 쪼았을 것만 같이 곱게 늙은 품 격이 더 고급스럽다. 경사진 터를 자 연스레 이용하였는데 듬직한 북석과 앙증맞은 향로석의 배치 높이가 자 연스럽게 묘소를 우러르게 유도한다. 후손들이 이 묘소를 찾아가는 동선과 참배하는 묘의 구성이 자연스러우면 서도 경건하도록 대단히 세심한 고려 가 엿보여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다. 석인상 역시도 적절한 규모로 세워 졌는데 세월만큼 마모가 진행되었다. 유독 목을 움츠린듯한 자세인데, 본 래 돌이라는 소재는 무게를 지탱하는 압축강도는 강하지만 전단강도는 약 한 법이라서 옆으로 부러질 약점을 안고 있다. 길쭉히 오랜 시간을 서 있을 석상 을 제작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 편으로 목을 움츠린 듯 가슴에 붙이 고 손도 돌출시키지 않고 몸에 붙여 새겼다. 이런 모습은 비현실적 이며 예술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석인 상 자체가 예배나 공경의 대상이 아 닌 만큼 엄숙히 시간을 이겨내는 게 그 본령이 아니겠는가? 또한 석회암이나 대리석처럼 좀 더 섬세하고 멋스럽게 조각이 가능한 돌 도 있겠지만, 그들의 주요 성분은 탄 산칼슘이어서 빗물에 침식되기 때문 에 이 묘처럼 500년 넘는 시간 앞에 세밀한 조각은 의미를 잃게 된다. 화강석의 재질은 애초부터 예리한 조각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거친 표피 의 질감 속에 은은하고 부드러운 선 에서 내면의 깊이를 찾는 멋이 있다. 한편 이목구비 뚜렷하고 팔을 내뻗은 조각상이 묘의 양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은근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부터 터벅 터벅 찾아온 이가 내 자손도 아닌 타 성이어서 일 순 실망했을 텐데도, 그 윽한 미소로 등을 토닥여주는 윤자임 묘소는 안온하고 편하기 만 하여 벌 렁 드러눕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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