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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정신과 리더십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2/07/07 [09:58]

이순신 정신과 리더십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2/07/07 [09:58]

4, 자 력 이순신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그 문제를 풀 주체는 자신이며, 풀 수단은 자기가 가진 정신적 자주력 과 물질적 자립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주위 사람 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제 힘으로 세상을 살아 쓰이 면 죽기로서 충성을 다하고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족하지, 권세 있는 남에게 아첨하고 의지하여 뜬 영화를 구하지는 않겠다”고. 그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설정한 목표를 이루려 했다. 자기 에게 부여된 책임을 제 힘만으로 완수코자 하는 이 자력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주인정신이요, 자주정신이며, 자립 정신이다. 이순신의 성공이 이같이 그의 자력에 바탕했기 에 그의 성공은 자기의 것이었고 남의 것이 되지 않았다. 류성룡이 어느날 파면되어 쉬고 있던 이순신에게, 이조 판서 이율곡이 한번 보자고 하니 만나보라고 권했다. 이 순신은 같은 덕수 문중이라 만나볼 수도 있지만 그가 인 사권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또 병조판서가 이순신의 화살통을 탐내어 달라고 하자 서 로의 이름을 더럽힐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고, 다른 병조 판서는 자신의 서녀를 첩으로 주어 그를 사위로 삼으려 했으나 이 또한 거절했다. 파면에서 벗어나 복직해야 하 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오직 스스로, 자신의 실력으 로, 자기 힘으로만 일어서려 했다. 이순신의 이 같은 주인정신, 자주. 자립정신은 젊은 시절 을 지나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전라좌수사가 되어 거북선 을 창제하고 전쟁 준비를 할 때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군비를 확정할 때도, 정유재란이 나고 전멸한 조선 수군을 재건할 때에도, 그는 권세 있는 자에 아첨하거나 남(조정) 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제힘으로 그 힘들고 거대한 일들 을 일구어낸다. 만약 이순신이 자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아첨으로 남의 힘을 이용해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풀어 가려 했다면 그는 자신의 성공을 남에게 바쳐야 했을 것이 니 그다운 값진 성공을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5, 이순신 리더십들의 원천인 내면가치의 정돈 이상 이순신의 각종 리더십의 원천이 되는 4가지 가치 (사랑, 정성, 정의, 자력)가 이순신의 내면에 정돈되는 모 습을 그려보기로 하자. 가, 4가지 가치의 발휘 정도 자력으로, 정성스럽고 바르게 산 사람이 어찌 이순신뿐 이었겠으며, 나라에 사랑을 바친 사람 또한 어찌 이순신뿐 이었겠는가. 그러나 그 자력과 정성과 정의의 강도는 사 람에 따라 다르고, 나라사랑의 정도도 사람에 따라 차이 가 난다. 보통은 적당히 정성스럽고, 적당히 남의 힘에 의 지하면서 살고, 바르게 산다고 하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굴절되면서 원만하게 살아가고, 또 적당히 애국하 다가 자기 이해와 나라의 이해가 충돌할 때는 슬그머니 피 해 나에게 득이 되고 편한 글로 돌아서들가지 않는가. 하지만 이순신에게는 “적당히”가 없었다. 적당히 남에 기대고, 적당히 정성스럽고, 적당히 바르고, 적당히 애국 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태어난 자신의 바탕과 치 열한 자기 수행을 통해 그의 정성스러운 정도, 자력 자 립의 정도, 바른 정도, 나라사랑의 정도는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이 끌어올리는 힘 을 양성하는 과정을 우리는 수양이라 하는데, 이순신을 본 사람들이 누구나 그를 깊은 수양을 쌓았다고 한 이유 를 우리는 이 대목에서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랬 기 때문에 평생토록 자신과 어긋나는 다른 가치와는 어떠 한 타협도 하지 않았고, 매사에 주인정신으로 열정을 갖 고 임할 수 있었으며, 오직 정의의 외길만을 가면서도 나 라사랑에는 목숨까지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 4가지 가치의 중층구조 이 사랑(愛), 정성(誠), 정의(正), 자력(自力)의 4가지 가 치는 또 어떤 심층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공부가 부족하 여 단정키는 어려우나 넷 중에서도 그를 성공으로 이끈 일반적이고 기층적인 가치는 충만한 사랑(愛)과 지극한 정성(誠)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정성이야말로 만사를 이루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기 때문이다. 성공의 핵심 요소인 사랑과 정성은 성공을 이루는 동전 의 양면이요, 실과 바늘 같은 것으로, 목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힘이 나오지 않고 목표달성에 정성이 없으면 계속 해 힘을 쓸 수가 없다. 정성은 일을 이루게 하는 힘이고, 사랑은 그 힘을 일어나게 하는 이유다. 사랑에 정성이 들 어가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정성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그 정성은 허망하다. 사랑과 정성은 정도 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합쳐야 성공을 낳는다. 그 러므로 모든 성공의 가장 기본적 요체는 바로 이 사랑과 정성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여기에 이순신 특유의 두 가치가 중층적으로 추가되니 그것이 곧 정의와 자력이다. 이순신 성공의 특성은 바른 길로서 성공하는 것이고, 제 힘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 래서 그의 성공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게 되고 항상 자기 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와 자력을 이 순신의 성공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특별한 성공 요인으로 본다. 다, 4가지 가치의 합일(合一) 이순신에게 있어 이 사랑. 정성 그리고 정의. 자력이라 는 가치는 확고부동한 절대가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들은 그의 치열한 수양을 통해 최고도로 발휘되면서 한 인간인 이순신의 내면에서 합일되어 구국제민이란 목표 달성에 집중되었다. 합일되고 집중되면 또 다른 상승(相 乘)효과를 낸다. 이 합일된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은 이순신 내면에서 하 나의 가치 회로를 만들었고 그 가치 회로는 한 번도 오작 동 없이 작용해 각종 상황에 적응할 최적의 리더십들을 발현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발현된 리더십으로 그는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이 세운 구국제민이란 목표를 이뤄 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백전백승(성공)의 리더십의 뿌리는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의 합일에 있고, 위에서 본 각종 리더십은 그 부리 위에 핀 꽃과 열매라 할 수 있다. 3, 이순신의 가치체계 수용 필자가 찾아낸 이순신의 4가지 근원가치가 과연 객관 성을 지닌 완전무결한 답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앞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더 완벽히 정립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 하에서는 우선 위 4가지 가치들이 이순신 리더십의 뿌리 가치임을 전제로 그 수용을 얘기해 보겠다. 1, 이순신 소환과 수용의 여러 형태 (1) 세상에서는 이순신을 여러 형태로 수용하며 만난다. 역사로서 연구하는 방법 외에도 소설, 시가(詩歌), 리더십 연구회 등 기구 설립, 유적지 탐방, 영화, 이순신 교육, 동 상 건립 등 수없이 많은 여러 형태로 이순신을 기리고 배 운다. (2) 그런데 우리가 수용하고자 하는 것은 이순신 리더 십의 원천인 그의 근본적 내면가치의 수용이다. 앞서 말 한 바 있듯이 우리는 이순신의 근본가치로 이 세상을 건 강케 하고 행복하게 하자는 목적을 갖고 수용하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이순신의 영웅담에 감탄하거나 오 락이나 일시적 흥미 위주로 이순신을 만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순신의 근원가치를 찾아내 이를 수용하는 형태 로 이순신을 만나야 한다. (3) 편의상 과거에 이순신을 불러와 만나는 것을 소환 으로 쓰고, 오늘날 우리가 다시 인순신을 불러오는 일은 수용이라 표현하기로 한다. 2, 이순신 소환의 역사 우리 국가, 사회는 이순신이 살아있을 때 세 번, 죽고 나 서 세번 그를 역사의 현장에 불러냈다가 일이 끝나면 다 시 역사의 바닷속에 묻어놓고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가, 살아있을 때 3차 소환 (1)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1차 소환 이순신은 39세 되는 해(1583) 함경도 남병사의 군관이 되어 두 번째로 함경도로 가고, 이어 건원보의 권관이 되 어 여진족과 대치한다. 그때 그는 여진족 두목 우울기내 를 사로잡아 북방경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부친이 별세함에 따라 일시 공직을 떠나 삼년상을 치르고 있을 때 나라가 그를 처음 찾는다. 여진족은 계속 발호하고, 이 를 막을 적임자로 이순신 만한 장수가 없자 나라는 그를 찾아서 기다린 끝에 탈상을 하자마자 다시 그를 함경도 조산보의 만호로 임명해 북방경비의 책임을 맡기고 이에 더해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시킨다.이것이 살아생전의 1 차 소환이다. 1차 소환으로 북방경비 책임을 다하던 중 여 진족은 녹둔도로 침략했고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피를 흘 리면서 싸워 잡혀가던 조선백성 60명을 구출해 왔건만 그 의 상사인 함경도 북병사 이을은 이순신을 파직했고 조정 은 그에게 백의종군을 명한다. (2) 전라좌수사로 2차 소환 왜와의 전쟁이 임벅해 오자 조정에서는 비변사를 통해 왜적을 막아낼 장수를 구하던 끝에 이순신이 47세 되는 해인1591년 정읍현감으로 봉직하던 그를 전라좌수사로 소환한다. 이것이 그의 2차 소환이다. 소환된 그는 전라좌 수사로 있으면서 옥포, 당포, 한산, 부산의 승첩을 통해 바 다를 지켜 왜적의 수륙병진전략을 봉쇄했고 이로써 나라 를 지켜내는 대공을 세웠건만 정유년 초 나라는 삼도수군 통제사인 그를 감옥에 가두고 사형 직전까지 가다가 또다 시 파면시키고 백의종군을 명한다. (3) 3대 삼도수군통제사로 3차 소환 이순신의 뒤를 이은 2대 통제사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 서 조선수군을 전멸시키고 그도 전사하는 참담한 상황을 맞자 나라는 흩어진 수군을 모아 다시 바다를 지켜낼 장 수를 찾아야 했다. 이순신 밖에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백 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3차로 또 소환한다. 소환된 이순신 은 아무런 원망 없이 나라의 부름을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43일 만에 명량승첩으로 제해권을 되찾는다. 도요토미 히 데요시의 사망으로 왜적이 철수할 때 이순신은 7년간의 나라와 한을 씻고 불의의 적을 응징하기 위해 노량 관음 포에서 싸우다 전사한다. 이것이 마지막이니 다시 살아생 전에 그를 소환할 일은 없었다. 나, 사후에 또 세 차례의 소환 이순신의 죽음과 동시에 전쟁은 끝이 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순신을 다시 찾지 않았고 역사와 바 다에 그를 묻어두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린다. 이순신 을 다시 찾는 일은 그의 사후 200년 가까이 지난 뒤 정조 대왕 때부터 시작된다. (1) 정조에 의한 1차 소환 18세기 말 조선에까지 서구 문명세력이 점차 동쪽으로 밀려온다. 그러자 정조는 외세에서 나라를 온전히 지켜낼 고민에 직면한다. 이 위기극복의 한 방편으로 정조는 역 사의 바다에서 다시 이순신을 불러낸다. 이순신을 영의정 으로 추존하고 왕명으로 그의 업적을 총정리해 “이충무 공전서”를 간행하고 그의 정신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극 복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이순신 은 또다시 역사의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2) 일제강점기에 2차 소환 이순신이 축출한 왜적은 조선을 떠난 지 300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을 침략해 그들의 속국으로 삼았다. 이순신을 300년전이나 묻어두고 반성 없이 살아온 업보이다. 임전 7년 전쟁의 아픔이 36년간의 노예 생활로 바뀐 것이다. 힘없고 헐벗은 망국의 백성들은 300년 전 침략자를 물리 쳤던 이순신이 한없이 그리웠다. 역사가, 소설가, 언론인 등에 의해 이순신은 또 소환된다. 그들은 이순신이야말로 그들을 위로해줄 유일한 인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이것이 2차 소환이다. 그러나 일제가 끝나자 이순신은 또 역사의 바다에 잠기고 만다. 이순신을 영원히 살려내 다시는 위기를 맞지 않도록 하기까지 가는 데에는 불러낸 자들(민중들)의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박정희에 의한 3차 소환 일제가 끝나고 이 땅에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그러나 일 제 36년의 압제 생활에다 6.25전쟁의 참화까지 겹쳐 민생 은 우선 의식주 문제에서 가난을 벗어나야 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가난을 벗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의 기 운을 의. 식. 주 생활에서 가난을 탈피하는 대로 모으고자 다시 이순신을 불러온다. 그는 현충사를 확대 복원하고 이순신의 유적을 복원 정비하며 그 정신을 새마을운동으 로 변환시켜 국가의 부강에 이순신 정신의 활용을 시도했 다. 그러나 이 시도도 그의 피살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이 순신은 또다시 역사의 바다로 가라앉고 만다. 이때는 박 정희가 독재정치를 한 부정의 무게가 덧붙여져 이순신은 그만큼 더 깊이 바닷속에 잠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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