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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문학=클리외가 없었다면 커피 대국이라는 브라질의 명성도 없었다

커피의 대륙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7/21 [21:25]

커피인문학=클리외가 없었다면 커피 대국이라는 브라질의 명성도 없었다

커피의 대륙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7/21 [21:25]

 

 ▲브라질은 커피 최대 생산국 © 아산미래신문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단연 브라질이다. 커피 생두를 수출할 만큼 충분히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나라는 70개국 정도다.

 

▲ 아마츄어작업실 아산점 대표 김남순, 교육전문강사, 아마츄어작업실 아산점, 충남 아산시 삼동로 45   © 아산미래신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브라질을 제외한 커피 수출국의 물량을 모두 합해도 브라질의 생산량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커피협회 IC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커피 붐이 일면서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가 늘어나 2016년 커피 생두 생산량에서 브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36.3퍼센트로 예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그래도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은 2위인 베트남(565만 포대)에 비해 1.7배나 많다.


질적인 측면에서 브라질이 베트남보다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부스타 품종(카네포라종)을 빼고 품질이 우수한 아라비카종만 따져도 브라질의 위력은 여전히 대단하다.


아라비카를 생산하는 나라들의 것을 모두 합쳐도 브라질의 생산량을 따라잡지 못한다. 아라비카 생산량은 세계적으로 1,923만 포대인데, 이 중 브라질의 아라비카가 50퍼센트(993만 포대)를 넘는다.


그래서 브라질의 커피 작황 상태에 따라 세계의 커피 값이 요동을 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3명 중 1명이 브라질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에 비해 브라질의 커피 역사는 깊지 않다.

 

▲ 국가별 커피 수출량  © 아산미래신문



브라질의 역사 이야기는 대체로 16세기쯤부터 시작된다. 이웃한 콜롬비아의 역사는 수도인 보고타만 하더라도 1만 년 전 농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브라질은 15세기까지 인디오 300만 명가량이 구석기 문화를 가지고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강 하류에 거주하던 투피족이 상당한 수준의 도시를 형성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16세기 초 포르투갈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브라진은 포르투갈의 무역업자이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에 의해 1500년에 발견된다. 당시 유럽은 붉은색을 내기 위한 염색제로 애용하던 ‘브라질우드Brazilwood’가 브라질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눈독을 들였다.


포르투갈은 1531년 브라질 북동부부터 식민 지배를 시작했으며, 브라질우드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나라 이름도 브라질이라고 불렀다.


포르투갈은 점차 남부로 식민 지역을 확장해나갔다. 저항하는 원주민을 없애거나 추방하고 부족한 노동력은 아프리카 흑인들로 잡아다 노예로 부리며 보충했다.


16~17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사탕수수가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흑인 노예들은 브라질의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를 당했다.


그러다 18세기에 중동부에 있는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에서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브라질은 진귀한 지하자원의 보고로도 명성을 떨쳤다.


포르투갈이 사탕수수와 금 무역으로 벌어들이던 돈이 점차 줄어들 즈음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커피 재배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포르투갈도 식민지에 커피를 재배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커피를 재배하는 국가들이 묘목을 유출하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안달이 났다. 당시 프랑스는 브라질과 북쪽에 접한 기아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다.


프랑스가 이곳에 커피나무를 심게 된 사연은 커피 애호가들에게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프랑스 왕립식물원에는 커피나무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앞서 17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인 헤릿 호프트Gerrit Hooft가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바친 것을 육종해 온실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있던 커피나무가 가브리엘 드 클리외Gabriel de Clieu라는 프랑스 해군 장교에 의해 카리브해의 작은 화산섬인 마르티니크로 옮겨진다.

 

▲ 클리외의 초상화  © 아산미래신문



클리외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 주둔하면서 섬의 환경이 네덜란드가 지배했던 동인도와 유사한 점에 착안해 커피를 재배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 클리외의 커피재배를 향한 열정  © 아산미래신문



클리외가 왕립식물원에 있던 커피 묘목 3그루를 3개월여 항해 동안 폭풍우와 해적의 위협을 극복하고 마르티니크섬에 성공적으로 옮겨 심은 이야기는 프랑스인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안겨준다.


그가 목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마실 물을 커피 묘목에 주며 생명력을 유지한 열정에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은 경의를 표한다.

 

▲ 마르티니크 위치  © 아산미래신문


그가 이토록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은, 클리외가 마르티니크섬으로 옮긴 커피나무가 브라질을 비롯해 콜롬비아, 페루, 파나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라틴아메라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모든 커피의 원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클리외가 없었다면 커피 대국이라는 브라질의 명성도 없었다는 말을 하기를 프랑스인들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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