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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문학=루왁커피는 그리움이어야 한다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6/23 [21:12]

커피인문학=루왁커피는 그리움이어야 한다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6/23 [21:12]

▲ 루왁커피  © 아산미래신문


루왁커피가 고가 논란과 함께 동물학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루왁커피는 진정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할 대상인가? 존재하는 것은, 비록 미물(微物)일지라도 가치가 있다는데….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것처럼, 루왁커피도 우리에게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 아마츄어작업실 아산점 대표 김남순교육전문강사아마츄어작업실 아산점, 충남 아산시 삼동로 45     ©아산미래신문

그것은 그리움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야생의 한 구석에서 살며시 맺은 커피열매를 사향고양이를 통해 맛보고 싶어 하는 원초적 그리움이다.


동물 커피’ 전성시대

코피루왁(kopi luwak)과 시벳(Civet)커피는 모두 긴꼬리 사향고양이가 소화를 시키지 못한 커피씨앗을 정제해 만든 커피를 일컫는 말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코피’는 ‘커피’,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영어로는 시벳)’를 의미한다. 예전엔 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발효되는 커피라 하면 단연 코피루왁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희소성 탓에 돈이 된다고 하니, 베트남은 족제비(Weasel) 배설물에서 골라낸 ‘위즐커피’와 다람쥐에게 커피열매를 먹이고 받아낸 ‘다람쥐똥커피’를 내놓았다. 예멘에는 ‘원숭이 똥 커피’가, 필리핀에서는 토종 사향고양이가 만들어내는 알라미드(Alamid) 커피가 있다.

 

여기에 태국과 인도에서는 코끼리까지 가세하면서 ‘루왁커피’ 대량생산시대를 열 태세다. 코끼리가 한 번에 배설하는 양이 200kg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야생 코피루왁을 채집하는 농민들이 반년동안 열심히 산속을 뒤지며 모아야 할 분량을 단숨에 해결하는 규모다. 에티오피아의 염소커피, 베트남의 당나귀커피, 서인도제도의 박쥐커피까지 있다는 전언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18세기 인도네시아 식민지 수탈의 결과물?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왜 루왁커피를 찾아 먹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그 시작이 인도네시아라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시기는 적어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며 자바 섬에 커피나무를 경작케 한 1696년 이후다. 이 무렵 유럽은 커피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유럽의 모든 나라를 거쳐 미국에도 보스턴과 뉴욕에 잇따라 커피 전문점이 상륙했다.

 

▲ 긴꼬리사향고양이  © 아산미래신문


사향고양이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인기척이 있으면 아예 모습을 감춘다. 더욱이 야행성이어서 그 동물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처음엔 어떤 동물의 배설물인지 모르고, 커피 생두를 찾다가 고육책으로 말라비틀어진 배설물로 커피에 대한 한을 풀었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루왁커피의 향미가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자신들이 키워낸 커피를 마실 때와는 비교가 되는 그윽하고 우아한 맛과 향이 우러났다.


세월이 흘러 재배한 커피가 남아돌 정도가 됐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루왁의 풍미에 매료돼 산속을 누볐다. 이렇게 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루왁이 뱃속에서 커피체리의 과육을 자연스레 제거해준 덕분에 힘들게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코피루왁에 ‘게으름의 커피’라는 별칭이 붙었다.

 

치솟는 가격으로 사육 ‘루왁커피’ 등장
루왁커피의 이런 면모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에까지 널리 전해져 인기를 끌자 가격은 치솟았다. 그럼에도 갈수록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물량이 속속 바닥나자 사향고양이를 가두고 억지로 커피열매를 먹이며 배설물을 받아내는 참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육해 만든 코피루왁과 야생 코피루왁의 맛이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람의 관능으로 이를 구별해 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야생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장치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 정부나 커피전문가 단체들이 발급한다는 인증서일 수 있다는 희망도 접어두는 게 현명하다.

 

▲ 코피루왁의 실태  © 아산미래신문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혹사시키고는 ‘야생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빚어낸 커피향미의 하모니’라고 속이는 뻔뻔한 상술이 통하지 않을 날도 멀지 않았다. 잡식성인 루왁은 이른바 디저트로 잘 익은 커피열매만을 가려내 먹는다. 따라서 배설되는 커피의 향미는, 루왁이 무엇을 먹고 커피열매를 후식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따라서 코피루왁을 채집하는 곳이나 시기에 따라 향미의 향연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자연의 맛과 멋이 창살 아래에서 이루어질 리 없다. 자유를 빼앗고 억지로 입을 벌려 먹이고 배설하게 해서 만드는 커피라면 ‘저주의 커피’이다. 과학의 힘이 아니라 문화의식으로 학대받는 사향고양이의 비명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참조 <커피인문학,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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