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아산의 전설] 용추와 용녀(둔포리)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4/21 [15:42]

[아산의 전설] 용추와 용녀(둔포리)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4/21 [15:42]

오랜 옛날 고려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충청도의 소금은 안면도 갯벌에서 얻은 소금으로 으뜸으로 꼽혔다. 그래서 안면도의 고운 소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면도의 승언리에 소금을 만들어 파는 태영이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태영이 만든 소금은 곱고 깨끗해서 안면도 장에 나가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늦은 여름철에는 안면도가 아닌 둔포장에 와서 소금을 팔았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그날도 소금을 배에 싣고 둔포장에 갔다. 소금장수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데 왠 낯선 사내가 뛰어왔다. “이보시오, 내 달라는 값을 쳐 줄 테니 나를 따라 오시오.” 남의 집 일꾼인 듯한 사내가 헐떡거리며 와서 말했다.


 “정말이오? 소금 값을 잘 쳐준다면야 나야 좋지요.” 사내가 앞장을 섰고 태영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얼마쯤 갔을 때 낡은 집이 보였다. 사내가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외관은 낡고 허술해보였으나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대부가로써 손색없이 집안이 잘 정돈 되어 있었다.


 “마님, 쇤네 다녀왔습니다.” 사내의 말에 방문이 열렸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마님과 처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태영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내 자네의 소문을 일찍이 들었네. 소금도 이미 먹어 봐서 솜씨 또한 잘 알고 있지. 해서 내가 자네의 소금을 모두 사고 싶네.


 대궐에서도 자네의 소금을 원하고 있으니 다른 곳에 팔지 말고 모두 내게 파시게.” “소금 값만 제대로 쳐 주신다면야 당연히 팔아야지요. 더구나 대궐에서도 제가 만든 소금을 원하신다니 영광입니다.“


 “당연히 제 값을 쳐 줘야지. 내년에도 다른 곳에 팔지 말고 이곳으로 가지고 오시게. 그럼, 흥정은 다 된 것으로 알겠네.“  “고맙습니다요, 마님.” “헌데, 자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지?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효자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입지요.“  “음, 헌데 아버님은 어찌 돌아가셨는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머니 품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음, 그렇구먼. 자네는 소금 구울 사람이 아닐세. 언젠가 자네 집안의 비극을 이야기 해 줄 날이 있을 걸세.“ 마님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옆에 있는 처녀에게 말했다.  “얘야, 인사드려라. 윤 도령이시다.” 태영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녀가 곱게 인사를 했다. 태영은 자신도 모르게 딸에게 넙죽 인사를 했다.
 

소금을 모두 팔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태영은 배에 올랐다. 태영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님은 왜 내게 도령이라고 했을까? 우리 집안의 비극은 또 뭘까?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지?’


태영은 머리에 온갖 생각들이 난무했다. 배가 서해로 나오자 출렁거렸다. 풍랑에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험한 뱃길을 통해 집에 도착한 태영은 방안에 돈을 풀어놓으면서 어머니께 다가앉았다. 그리고 둔포에서 소금을 판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어머니, 헌데 집안의 비극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어찌 돌아가신 겁니까?“ “글쎄다? 낸들 아는 게 없구나. 네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셨는데 객사를 하고 말았으니 알 수가 없구나.“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집안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았으나 태영으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마님이 언젠가 이야기 해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님이 처녀에게 소개해 줄 때 윤 도령이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양반 집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뀌어 다시 늦여름이 되었다. 여름 내내 소금을 만든 태영은 배에 소금을 가득 싣고 둔포로 향했다. 거친 바다를 해치고 둔포에 도착해 배를 선창에 매어 놓았다. 그리고 곧장 마님 집으로 향했다.

 

“안면도에서 소금 장수가 왔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쳤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태영은 살며시 대문을 밀어보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마루 쪽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아이쿠, 저 저게 뭐야?” 마루 위 절구통에 산발한 여인이 꽁꽁 묶여 있었다. 집안에 무슨 곡절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무서워서 그냥 돌아설까 망설이고 있는데 여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태영은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마루에 올라갔다. 신음소리가 났다. 태영이 여인의 얼굴을 바로 세워주었다.
 

“아니, 당신은? 그때 그 아가씨가 아닙니까?“ 태영은 너무도 놀랐다. 여인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도련님, 어서 피하셔요. 도련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올 거예요.“


태영은 재빠르게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여인을 들쳐 메고 도망쳐 나왔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있었다. 선창을 향해 달음질치는데 멀리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역적의 딸이 도망 쳤다. 빨리 찾아라.”


횃불을 들고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태영은 숨을 죽이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간신히 선창에 닿았다. 선창에서 여인을 배에 태운 태영은 힘껏 배를 밀어 물에 띄웠다. 배는 이내 어둠 속에 가려졌다. 그때 선창 쪽을 향해 횃불이 몰려들었다. 태영은 힘차게 노를 저었다. 횃불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안면도에 무사히 도착한 후 여인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도사(都事)였으며, 역적으로 모함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고 했다.


 “도련님의 아버님과 제 부모님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예요.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진짜 역적이지요.“ 두 사람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가씨, 우리 힘을 합쳐 부모님의 원수를 갚읍시다.” “예, 도련님.” 두 사람은 결연한 의기를 보였다. 태영과 여인은 낮에는 염전에서 소금 만드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무술을 닦았다.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서로 힘이 되어 주면서 생활을 해 나갔다.


일 년이 지났다. 다시 늦여름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배에 소금을 가득히 실었다. 둔포에 도착한 이들은 소금을 헐값에 처분했다. 그리고 여인이 살던 집으로 향했다. 슬며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집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들었다. 군사들은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두 사람은 개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부모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대감 집을 찾아냈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사뿐히 담장을 넘어 원수가 자고 있는 방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단숨에 목을 쳐서 원수를 갚았다. 두 사람은 집을 빠져 나와 밤새 다시 둔포로 왔다.


 “아가씨, 이제 나는 소금 장사를 그만둘까 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개경에 올라가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예, 도련님,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개경으로 떠나기 전에 아가씨가 살던 집에 다시 한 번 들렀으면 합니다.”


두 사람은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사방이 캄캄해지자 어둠을 틈타 여인의 집에 갔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횃불을 든 군사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다.
 

“네 놈들이 이곳에 나타날 줄 알았지. 감히 우리 대감을 살해하다니. . .네 놈이 바로 윤도사(都事) 아들놈이지? 여봐라, 이연놈들을 죽여라.“


군사들이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칼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군사들이 한 명씩 칼에 맞아 쓰러져 나갔다. 마당에는 시체들이 쌓여갔다.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는 순간 지붕에 숨어있던 놈들이 뛰어내리면서 태영과 여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두 사람은 가슴에 칼을 맞고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로 죽들 수는 없었다. 사력을 다해 적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적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태영과 여인도 땅바닥에 쓰러졌다.
 

두 사람이 막 숨을 거두려할 때 하늘에서 두 줄기의 물빛이 내려왔다. 태영과 여인이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깨끗한 물이 퐁퐁 솟아나 샘이 되었다.
 

둔포면의 용남산 기슭에 가면 샘이 하나 있다. 이 샘을 용추라고 부른다.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다가 땅으로 떨어진 태영은 용이 되어 용추에서 살게 되었다. 여인은 하늘로 올라가 용녀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하늘과 땅에 살면서 일 년에 한 번, 달 밝은 밤에 용남산 기슭에서 만난다고 한다.
 

이승에서 사랑하는 사이였으면 모두가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나 서로가 사랑하기 이전에 죽음을 맞이했기에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용추라고 부르는 못을 태영의 못이라고도 부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여인의 화신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도사/ 고려시대, 문하성, 성서성, 삼사, 도평의사사 등에 딸린 종5품에서 종7품까지의 벼슬
    

발행처  온양문화원                                                     
 

▲ 저자 장미숙   © 아산미래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