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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전설] 고용산(성내리)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4/08 [16:06]

[아산의 전설] 고용산(성내리)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4/08 [16:06]

 

▲ 고용산(성내리)   © 아산미래신문

 

영인면 성내리와 신봉리 경계에 높이가 약 300m에 이르는 고용산이 있다. 그런데 고용산에는 나무는 별반 없고 돌들이 더 많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 1578년(선조11년)에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내려왔다. 이지함은 아산현감으로 있으면서 걸인과 노약자를 위해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구호에 힘썼으며, 헐벗은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다. 백성들은 이지함을 어버이처럼 믿고 따랐다.
 

6월이 막 넘어가려던 어느 날 이지함이 통인 한 명을 데리고 고용산에 올랐다. 바위로 이루어진 고용산을 한여름에 오르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통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현감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앞서 걷는 이지함의 발걸음은 가뿐하기만 했다. 산에 오르자 주위를 둘러본 이지함이 통인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바위들을 돌아다니면서 두들겨 보거라.” “예? 바위를 두드려 보라굽죠?” 난데없이 바위를 두드리라는 말에 통인은 깜짝 놀랐다.


 “오냐, 한 군데도 빠뜨리지 말고 두드려 보거라.” 재차 현감의 명령이 떨어지자 통인은 얼굴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바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통인이 바위를 두드리자 이지함은 바위에서 나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우렸다.


 “잠깐 멈춰라. 지금 그 바위를 깨 보거라.” 현감의 명령에 통인은 있는 힘을 다해 바위를 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위가 쩍 하고 입을 벌리자 그 속에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었다. 바위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오자 통인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됐다. 이제 다시 바위 아래 묻어라.“ “아니, 이 귀한 걸 왜 다시 묻습니까요? 가지고 내려가셔야죠.” 통인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어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묻어라.” 현감의 말에 통인은 울상을 지으며 금은보화 위에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산길을 내려왔다.


그날 밤, 통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위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금은보화를 어떻게 하면 몰래 갖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현감이 있는 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다가 돈에 눈이 먼 통인은 기막힌 생각을 해 냈다. 현감이 몸이 좋지 않아 매일 지네 즙을 먹는데 지네 독을 없애기 위해서 생률을 먹는 것을 생각해 냈다.

 

"옳지, 지네 독을 없애지 못하게 생률 대신 버드나무를 깎아서 먹게 하면 돼." 통인은 버드나무를 생률 모양으로 깎았다. 깎아 놓고 보니 어쩜 그리 생률과 똑같이 생겼는지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되자 통인은 지네 즙을 현감에게 드렸다.

 

그리고 옆에서 기다렸다가 생률 모양으로 깎은 버드나무를 드렸다. 현감이 생률 모양의 버드나무를 삼키고 얼마 있지 않아 외마디 비병을 지르며 쓰러졌다. 온몸에 지네 독이 퍼진 현감은 결국 통인의 욕심에 의해 죽고 말았다.
 

현감의 죽음을 확인한 통인은 그 길로 고용산에 올랐다. 그리고 금은보화를 찾기 위해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리기도 하고 깨기도 하면서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바위가 그 바위였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통인은 할 수 없이 산에 있는 바위들을 하나 둘 모두 깨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바위 깨기는 해가 저물도록 계속 됐다. 해가 뉘엿이 넘어갈 즈음 드디어 그 바위를 찾았다. 그런데 그 바위 속에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깨진 돌조각들이 가득 차 있었다. 통인은 기진맥진해서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 순간 깨진 돌들이 한꺼번에 굴러내려 통인은 그 자리에서 돌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지함이 죽고 난 후 8년이 흘렀다. 1636년(인조14년) 12월에 청나라 태종이 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년에 일어난 난이라고 해서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1636년 12월에 일어난 난이 이듬해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짧은 기간에 전쟁은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전쟁포로가 발생했고 씻을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병자호란으로 전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영인에도 적병들이 밀려 왔다. 마을사람들은 적병들을 피해 모두 고용산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적병들이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물밀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은 힘을 합쳐 싸우고 싶었으나 대적할 무기가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여기 있는 돌을 이용합시다. 우리가 높은 곳에 있으니 이 돌을 던져 적병들을 죽이면 될 겁니다.”
 “맞소, 우리 모두 힘을 내서 적병을 죽이고 고향을 지킵시다.” 사람들이 목청껏 함성을 지르며 적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적들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결국 적들은 칼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채 마을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을 가고 말았다.


아산 현감으로 있던 이지함이 통인을 데리고 고용산에 올라 금은보화를 보여준 것은 병자호란에 대한 선견지명으로 통인으로 하여금 돌을 깨게 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인/ 조선시대, 지방관아에 딸려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
언감생심/ 감히 바랄 수도 없음
                                              저자 장미숙,  발행처  온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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