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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돌] 영모바위(인주)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3/17 [13:33]

[아산의 돌] 영모바위(인주)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3/17 [13:33]

▲ 인주 영모바위  © 아산미래신문

                                               
아산시는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충남 서해안의 한켠을 딛고 중원대륙을 바라보고 있다. 아산만권의 대대적인 개발과 교통의 흐름으로 한적한 어촌의 모습은 더 이상 찾기 어렵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잠깐 모습을 보여주는 바다 한복판의 바위가 있으니 영모바위이다.


아산을 기준으로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 길 중 행담도 휴게소와 평택항 부두 사이 왼편에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는 난간이 있어서 꼼꼼하게 바라보아야만 찾을 수 있다. 현재 경기도 평택시와 경계하여 다가오는 서해안 시대를 경쟁하는 지역이고,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이 바다 복판의 바위를 굳이 소개하고자 함은 이 바위와 바다에 어려 있는 치욕스런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되짚어 보려는 취지이다.


영인지역에서는 옛 지도에 영웅암으로 표기된 이 영모바위를, 잉모바위 혹은 영웅바위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청일전쟁 중 어느 날 어스름한 새벽녘에 적선으로 오인해서 발포하였을 정도로 긴장된 전쟁터이기도 하였다. 맑은 날 영인산 정상에 오르면 그 뽀족하고 영험스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극성인 현실에서는 이미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영인지방에서는 영모바위 대장이 아산의 상징 바위인 어금니바위를 본처로 두었고, 고룡산 백련암 뒤의 대장 첩바위를 후처로 두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후처인 대장 첩바위의 강짜가 하도 심하여 화가 난 영모바위 대장이 따귀를 올려 부치자, 후처는 화가 나서 오늘날까지 돌아서 앉아 있다고 한다. 즉 바다 위에 날카롭게 서있는 이 바위가 대장이라는 것이다.

 

청일전쟁은 조선에 대한 일제 침략의 중대 변곡점이 된 일대 사건이었다. 전 세계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 중 조선에 대한 상국으로서의 지배권을 놓지 않으려는 청나라에 대해, 십 수년을 철저하게 준비해 온 일본은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그에 따른 청나라의 개입을 한반도 침탈의 더없는 구실로 삼았다.
 

서해 지역에서 군산을 제하면 곡류를 비롯한 물류 소통의 최대 거점이었던 아산은 1894년 6월 9일 백석포에 청군 선발대가 상륙함에 따라, 청나라 군대의 주둔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일본군의 공격에 따라 풍도 앞바다의 전투, 아산만 전투와 청군 주둔지의 방어선으로 육상전투가 발발한 성환전투를 통해 일본은 청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다.
 

긴 역사 속에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중국이 무너지는 순간이자,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은 남의 나라 간의 전쟁이면서도 막상 전쟁터는 조선 땅이요 조선의 앞바다였다. 아산에 주둔했던 청국 군대를 먹이고, 그들의 군마를 챙기는 것은 아산지역 백성의 몫이어서 허리가 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또 다시 일본군을 챙겨야 했기에 아산의 백성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이기고 누가 패하였든 우리는 그 승리와 패배를 기념하기에는 국운이 초라했고 비굴한 시간일 뿐이었다.
 

▲ 인주 영모바위  © 아산미래신문

 

자연등대처럼 뭍에 다다르기 전 서기로 반짝이던 영모바위의 꼿꼿한 모습은 남의 나라에 와서 서로 먹잇감을 두고 싸우는 맹수들을 코앞에서 바라봐야 했던 치욕의 역사로 남았다. 청나라 군사 삼천 명이 백석포 앞바다에 도착하면 영인의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일일이 둘러업고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뻘을 지나 상륙시켰다고 한다. 설사 아산의 구세주가 왔다고 해도, 어찌 삼천 명을 업고 갯벌을 가로질러 나를 수 있을까?
 

이제 포성이 멎고 비명이 잦아든 이 바다는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갈 희망의 바다가 되었고, 중국 대륙과의 터널을 개통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거대한 화물선 사이에서 마치 암초처럼 조심해야 할 돌로 인식될 수 있지만, 청일전쟁 불망탑처럼 바다 가운데에서 역사적 교훈을 알려주는 영모바위를 기억했으면 한다.
 
                                                         발행처  온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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